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진 않지만,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은 좋아합니다.
어릴 적 본 고전들에도, 주인공이 대저택에서 창문가에 앉아 독서 하는 장면이 꼭 나왔던 것 같아요. 바깥의 궂은 날씨로부터 완벽히 단절된 채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그 장면은 묘한 안도감과 대리 만족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서 그저 안전함만 즐기기엔 조금 심심하지 않은가요? 뇌를 깨워줄, 으스스한 호러 소설 어떠세요? 이런 장마의 음울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면서도, 저희 밑줄 클래식에 잘 어울리는, 고딕 호러를 들고 왔습니다. 호러를 잘 못 보시는 분도 걱정하지 마세요. 잔인함 보다는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심리 소설에 가까우니까요😱
나사의 회전ㅣ헨리 제임스ㅣ민음사
유령 들린 집의 원조 격, 밀도 높은 심리 공포 소설을 읽고 싶다면?🕸️
영국의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여자가 유령을 목격합니다.
여자는 그 유령이 자신이 가르치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확신하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정말 유령을 본 게 맞을까요?
1인칭 묘사로 이루어지기에 오로지 가정교사의 말로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뭔가 섬뜩한 광기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독자는 자신이 읽은 것이 정말 진실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데요. 수많은 복선과 결말의 모호함 때문에 진실에 대한 논쟁이 많은 소설로도 유명합니다.
과연 그녀가 본 유령은 진실이 맞을까요? 아니면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의심'과 '불안'이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유독 피곤했던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보니 제가 사지도 않은 칫솔이 화장실에 놓여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걸 샀던가? 하며 낯선 칫솔의 모습을 본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별일은 없으니 놀러 왔던 친구가 두고 갔겠거니 하며 넘겨버렸지만, 친구들한테 물어도 아무도 그 칫솔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필 날씨 역시 한참 장마 시즌이었고, 천둥도 쾅쾅 치는 와중이라 괜히 무서워져 한동안 저만 알 수 있는 표시를 해두고 나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괜히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짚어보며 다시 한번 곱씹어보기도 했죠.
이처럼 저는 호러의 꽃은 '의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러는 주인공의 삶에 이질적인 존재가 등장해 평화로웠던 일상을 단숨에 뒤바꿔 놓는 과정인데, 이 모든 시작의 전에는 사소한 의심이 있죠, 하지만 과연 그 의심이 정말 맞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젊은 가정교사 역시 , 완벽하게 순수하다고 생각한 아이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니 의심이 피어오릅니다. 그러다 저택에서 유령을 보고 그것이 악의 근원이라고 믿죠. 제가 화장실에 놓인 낯선 칫솔 하나에 온갖 상상을 덧붙이며 두려움에 떨었던 것처럼, 주인공 역시 아이의 퇴학이라는 작은 의심의 씨앗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망상으로 키워나갑니다.
결국 가장 끔찍한 호러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유령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좀먹고 현실을 왜곡시키는 우리 안의 '의심' 그 자체 아닐까요?
님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혹시 마음 한구석에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을 품고 계시지는 않나요? 직장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 평소와 다른 친구의 묘한 눈빛, 혹은 저의 '낯선 칫솔'처럼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 말이에요.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작은 씨앗에 스스로 물을 주며, 내 안의 거대한 유령으로 키워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내 안의 작은 불안과 의심들이 호러를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축축한 장마철, 내면의 유령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단단하고 뽀송한 한 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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