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시원하다 못해 조금 춥게까지 느껴지는 가을이 시작되었네요🍂분명 여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막상 서늘해지니 여름이 너무 아쉬워요🥲 최근 들어 정신없이 바빠진 점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 앞에 닥친 일을 쳐내고, 해내고 하다 보면 이 가을도 순식간에 지나가겠죠?
옛말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다고 하잖아요. 그게 진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 게, 새로운 경험이나 배움이 없는 일상에 대해서는 뇌가 그날 하루를 압축해서 저장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어릴 때는 세상이 너무 새로워서 매일매일 저장📸을 수십 번씩 하니까 돌이켜 기억을 되짚어보면 하루가 너무 길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고 익숙해진 일과에 대해서는 .ZIP으로 저장해버리니 되돌아보면 안까지 열어볼 일 없는 압축 파일 하나만 띡-하고 남아 버리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속 구절이 생각났어요. 매일 반복되는… 에이 그냥 영어 문장 먼저 보시고 나머지는 밑줄에서 읽어보시죠!
고도를 기다리며ㅣ사뮈엘 베케트ㅣ문예출판
연극 보러 갔다가 배우들이랑 ‘한 명’을 계속 기다린 썰 푼다
늙은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들은 바위와 말라비틀어져 가는 나무 한 그루만이 존재하는 삭막한 땅 위에서 매일 만나 기다림을 이어간다. 그들의 유희라고는 생각 없이 주고받는 대화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것뿐이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도 씨’는 과연 누구이며, 이들은 왜 그를 기다리는 걸까요. 미국 교도소의 죄수들에겐 ‘자유’였고, 러시아에 억압 당하던 시절의 폴란드에서는 ‘해방’이었으며,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절 알제리에서는 ‘토지개혁’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같이 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어요. 원작을 이미 알면서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와 함께 목이 빠지도록 ‘고도 씨’를 기다리는 경험이란!🎭
요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85분을 기다리게 된다면, 당연히 바쁘게 주어진 일을 해치우느라 지나고 보면 그런 날도 있었나.. 싶지만 고도 씨를 기다리던 순간은 생경하게 기억나요.
무엇이 이 기다림을 다른 속도로 만든 걸까 생각하면 그냥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낸 게 아니라 '기다린다'라는 걸 의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뇌가 압축 파일로 만들 새도 없이, "이건 특별한 경험이야"라고 태그📍를 달아버린 거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어쩌면 하루가 기억에 남고 안 남고는 그날 뭘 했느냐보다, 내가 그 시간에 얼마나 깨어있었느냐의 문제 아닐까 하고요. 그 차이가, 압축 파일과 선명한 기억의 차이를 만드는 거 아닐까요?
이번 가을, 저는 이제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요. 비유하면 고도 씨의 집 주소를 알아내서 찾아가 문을 두드릴 겁니다. 능동적으로요!🚪 님도 이번 가을엔 뭐든 하나, 의식적으로 저질러보세요. 기다리지만 말고요. 그게 여행이든, 연락이든, 안 해본 것에 대한 도전이든 나중에 "그해 가을엔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순간 하나쯤은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